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

스스로를 정의하기보다 성질과 취향이 대신 말해 주기를 바라는 주어들. 삿된 세상은 그런 주어들로 가득하다.

접속 부사는 삿된1 것이다. 그건 말이라기보다 말 밖에서 말과 말을 이어 붙이거나 말의 방향을 트는 데 쓰는 도구에 불과하다. 말을 내 쪽으로 끌어오거나 아니면 상대 쪽으로 밀어붙이려는 ’꼼수’를 부릴 때 필요한 삿된 도구. 그러나 말이 이야기가 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이기도 하다. 이야기란 원래 삿된 것이니까.

김훈은 좀처럼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상의 삿된 이야기를 들려주기보다 삿된 세상에 대해 말하려고 애쓴달까. 삿된 세상은 삿된 말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게다가 삿된 말들은 삿된 방식으로 이리저리 뒤틀리고 접붙여지기 일쑤다.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로 기워진 말들의 허접함이, 말하는 자 혹은 말해야 하는 자를 비참하게 만들 때 세상은 삿되다. 그 삿된 세상에서 주체는 오로지 주어의 자리를 차지하는 주격으로만 존재한다. ’이, 가’가 지시하는 바로 그 대상. 서술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책임지지 못하는 주어로서만 ’기능’하는 주체들. ’나는 누구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를 말해 준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정의하기보다 성질과 취향이 대신 말해 주기를 바라는 주어들. 삿된 세상은 그런 주어들로 가득하다.


  1. 보기에 하는 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나쁘다.↩︎

영어 문장이 되감기는 공간으로 의미를 만든다면, 한글 문장은 펼쳐 내는 시간으로 의미를 만든다

더군다나 한글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 영어가 되감는 구조인 이유는 관계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관계 부사나 관계 대명사를 통해 앞에 놓인 말을 뒤에서 설명하며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가는 구조가 흔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어에서 관계사라고 할 만한 건 체언에 붙는 조사밖에 없다. 따라서 한글 문장은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갈 이유가 없다.

The man who told me about the murder case that had happened the other day was found being dead this morning. 일전에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 준 그 남자가 오늘 아침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앞의 영어 문장이 관계사를 중심으로 두 번이나 되감기면서 의미를 확장해 나아갔다면, 한글 문장은 계속 펼쳐졌다. 영어 문장이 되감기는 공간으로 의미를 만들었다면 한글 문장은 펼쳐 내는 시간으로 의미를 만든 셈이다. 그러니 한글 문장은 순서대로 펼쳐 내면서, 앞에 적은 것들이 과거사가 되어 이미 잊히더라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 요소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해야 한다.

계속 걸어간 나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나는 계속 걸어서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첫째 문장은 주어인 ‘나’를 수식하는, 동사 ‘걸어가다’의 관형형 ‘걸어간’과 그걸 수식하는 부사 ‘계속’이 만든 문구 ‘계속 걸어간 나는’이 만드는 거리와, 그 뒤로 이어진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가 만드는 거리가 다르다. 앞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밭은 느낌이다. 이렇게 거리가 일정하지 않으면 뭔가 펼쳐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둘째 문장처럼 거리가 일정하게 펼쳐 낸 경우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해진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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