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왜 투고하려 하는가?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가? 어떤 독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최근 서점가에서는 ‘글쓰기’와 ‘책 쓰기’가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내가 쓴 책 한 권쯤’ 가져 보고 싶은 욕망이 생각보다 폭넓게 자리 잡았다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전자출판 시장의 빠른 성장과 맞춤형 소량 출판 시스템의 보편화, 독립출판물의 부흥도 ‘책 쓰기’라는 바람을 어느 정도 쉽게 이룰 수 있게 해 주었다. 당연히 출판사에 투고되는 원고도 늘어났다. 그러나 출판으로 이어질 만한 원고를 만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주제의 독창성이나 상업출판물로서의 잠재성 등 투고 원고를 검토하는 출판사의 일반적 기준은 차치하더라도 자신의 글이 왜 책으로 출판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나름의 ‘합목적성’을 가진 원고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내 글을 책으로 출간하고 싶어서”라는 말은 “왜 투고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될 수 없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당신의 원고는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세상)과 사람들(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거울 앞에 선 채 당신 자신만을 비추며 독백하고 있는가? 어쩌면 여기에서 “왜 투고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자신의 원고에 지나친 회의감이나 과장된 자신감을 갖지 않으려면 예비 저자도 ‘신경증적 자기 독서Hysterical Self-Reading’가 가능해야 한다. 즉 자신의 원고를 독자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당신이 왜 투고를 하려 하는지, 당신의 원고가 왜 출판되어야 하는지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을 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원고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이 원고를 필요로 하는 독자가 있는가?
당신의 원고가 분명한 목적과 그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었다면 문체나 기교, 표현력 등에 대한 부담은 어느 정도 떨쳐 내도 된다. 문장력과 스타일만 보고 출판을 결정하는 출판사는 없다.
모두가 삶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사람 냄새를 느꼈다. 미안하지만 그건 주말에 뒷산 오솔길을 걷다가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읽을지는 생각지도 않고 자기감정에 침잠해 버렸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자기만의 관점과 감정을 충실히 드러내되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차별화되느냐에 있다.
왜 산티아고에 갔는가? 산티아고를 당신만이 얘기할 수 있는 다른 주제들과 연결할 수 있는가? 산티아고 이전과 이후에 무엇이 바뀌었는가? 그곳에서 얻은 당신만의 무언가를 특정 분야의 지식으로 가공해 전달할 수 있는가? 차별화된 콘셉트를 이끌어 내지 않는다면 설령 ‘산티아고’가 투고를 한다 해도 책이 될 수 없다.
다른 책의 일부 내용, 다른 사람의 주장을 자신의 글에 인용할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히고 참고문헌에 적시하라. 다른 책에서 본 어떤 내용이 마음에 든다고 서너 문단을 통째로 자신의 원고에 가져다 쓰지 마라. 방식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식의 글쓰기는 당신을 게으른 저자로 보이게 만들 뿐이다. 남의 글과 자기 자신의 글을 구분하라. 중요한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이 원고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이 원고를 필요로 하는 독자가 있는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며 평생 만날 일도 없지만 나의 원고에 관심을 가져 줄 독자, 그런 독자가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
-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아이를 키운 저자가 엄마인지 아빠인지,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 최소한의 정보도 담겨 있지 않다. (단, 투고 기획서에서 저자 프로필을 구체적으로 쓴다면 이 내용은 생략될 수 있다.)
- 육아 경험담이라는 내용 정도만 짐작할 수 있을 뿐 ‘진실한 사랑과 베풂의 가치’란 주제는 너무 추상적이고 광범위하다. 게다가 육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미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다. 왜, 어떤 계기로 이런 가치를 발견했는지가 짤막하게라도 드러나야 한다.
- 많은 초보자가 실수하는 최악의 표현이다. 대개 ‘담담하다’는 표현은 단어 자체가 떠올리는 중립성(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감정적 동요 없이 차분한)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써도 ‘착하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쓰면 독자도 마찬가지로 책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담담하게 지나쳐 버릴 것이다. 이 표현 하나가 결국 그 책을 별 특색 없이 밋밋한 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팔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 표현 때문이다.
- 밑줄 칠 곳마저 없는 치명적인 누락. 결정적으로 누가 이 책을 볼 것인지, 어떤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지가 빠졌다. 예상 독자가 상정되지 않은 책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 에세이라면 어떤 에세이인지도 드러나야 한다. 국내에 출간되는 에세이만 해도 한 달에 수십 종이다. 출간되면 서점에는 자동으로 ‘에세이’ 분야에 자리를 잡겠지만 콘셉트에서 ‘그냥’ 에세이는 없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원고를 읽고 기쁨을 느끼거나 도움을 얻게 될 누군가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면 계속 나아가도 좋다. 아마도 당신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가르쳤던 학생이나 직장 동료가 아니라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며 평생 만날 일도 없지만 나의 원고에 관심을 가져 줄 독자, 그런 독자가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
당신의 책이 있어야 할 곳은 서점이 아니라 독자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떠올릴 수 있는 독자가 단 한 명이어도 괜찮다. 굳이 ‘단 한 명의 예상 독자’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독자를 부풀리지 말 것. 바꾸어 말해 당신의 원고에 충실한 특정 독자(소수라도 괜찮다)를 찾을 것.
둘째, 그러나 당신의 원고가 세상과 어떻게 더 많은 인연을 맺게 될지 과감하고 자유롭게 상상해 볼 것.
이런 상상과 발견의 과정에서 놀라운 떨림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예비 기획서를 보내는 일이 낚시와 같다는 점을 기억하자. 낚싯대에 너무 많은 미끼를 달아 놓으면 낚시감을 잃고 만다. 간결하고 간단명료한 방식으로 그리고 열정을 담아 읽는 사람이 감질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획서에 가제목을 5–6개씩 나열해 놓고 그중 하나가 책의 제목이 되면 좋겠다고도 한다.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편집자의 눈에는 원고와 콘셉트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투고하기 전에 충분히 원고를 고쳐라. 가제는 고심해서 만든 콘셉트에서 추출하거나, 차례 중 호기심을 끌 만한 것으로 정하면 충분하다.
작가는 다른 작가들을 염두에 두며 글을 쓰지만, 아마추어는 자기 이웃이나 직장 상사를 의식하며 글을 쓴다
움베르토 에코는 “작가는 다른 작가들을 염두에 두며 글을 쓰지만, 아마추어는 자기 이웃이나 직장 상사를 의식하며 글을 쓴다. 그래서 아마추어는 그들이 자기 글을 이해하지 못할까 혹은 그들이 자기의 대담성을 용납하지 않을까 저어한다(대개는 부질없는 걱정이지만 말이다). 아마추어는 말줄임표를 마치 통행 허가증처럼 사용한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혁명을 일으키고 싶어 하면서도 경찰의 허가를 받고 혁명을 하려는 사람과 다름이 없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