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투 원
뛰어난 생각은 흔치 않다. 하지만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희귀한 것은 바로 용기다.
물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는 기존의 모형을 모방하는 게 더 쉽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다시 해봤자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익숙한 것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된다. 창조라는 행위는 단 한 번뿐이며, 창조의 순간도 단 한 번뿐이다. 그 한 번의 창조로 세상에는 낯설고 신선한 무언가가 처음으로 생겨난다.
뛰어난 생각은 흔치 않다. 하지만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희귀한 것은 바로 용기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킨 주체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소규모 집단들이었다. 그 이유를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역으로 소규모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큰 조직에서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가 어렵고, 혼자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관료제적 계급 조직은 행동이 굼뜰 수밖에 없고, 이해관계가 단단히 맞물려 있는 조직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게 된다. 변비에 걸린 것처럼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조직에서는 실제로 일을 하기보다는 일이 진척되고 있다는 신호만 내보내는 편이 승진에는 오히려 더 유리하다(지금 다니는 회사가 이렇다면 당장 그만두는 편이 낫다).
경쟁은 이데올로기다
경쟁 사업이 가진 문제점은 단순한 이윤의 부족만이 아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마운틴뷰에서 식당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수십 곳의 경쟁자들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으므로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이윤을 적게 남기고 저렴한 음식을 제공한다면 직원들에게는 최소한의 임금밖에 지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줄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줄여야 할 것이다. 작은 식당에 가보면 할머니가 카운터를 보고, 주방에서는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고의 식당들이라고 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곳에서는 미셸린의 별점처럼 각종 감상평과 평가 점수 시스템들이 치열한 경쟁 문화를 조성해 셰프들을 미치게 만든다(미셸린의 별점 3개를 받았던 프랑스 식당의 셰프 버나드 루소는 “별이 하나 줄어들면 자살해버릴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셸린은 평가 점수를 바꾸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루소는 유명한 프랑스 식당 안내책자가 자신의 레스토랑 등급을 낮추었던 2003년 자살했다). 경쟁적 생태계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잔인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것은 경쟁이 단순히 경제학적 개념이나 개인 또는 기업이 시장에서 겪어내야 하는 불편함이 아니라 하나의 강박관념, 즉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는 이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사고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을 설파하고, 경쟁은 필요한 것이라고 뼛속 깊이 새기며, 경쟁이 요구하는 것들을 실천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경쟁 속에 갇힌다. 경쟁을 더 많이 할수록 우리가 얻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신생기업이 유념해야 할 것
신생기업에게 완벽한 표적 시장은 경쟁자가 없거나 아주 적으면서도 특정한 사람들이 적은 규모로 모여 있는 시장이다. 뭐가 되었든 큰 시장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이미 여러 회사가 경쟁하고 있는 큰 시장이라면 더욱더 나쁜 선택이다. 따라서 만약 기업가들이 1억 시장의 1퍼센트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언제나 적신호라고 봐야 한다.
워비파커의 웹사이트에 가보면 ‘TV는 훌륭한 대형 확성기’라고 간단히 쓰여 있다. 새로운 고객 한 명을 확보하는 데 수십 달러밖에 쓸 수 없다면 제일 큰 확성기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기업가들은 모두 눈에 띄는 광고 캠페인을 부러워하지만, 신생기업이라면 광고를 통해 대형 회사들과 끝없이 경쟁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를 만들고, 이목을 끄는 홍보 작전을 펼치겠다는 유혹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