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책을 자기 인지도와 커리어의 ‘부록’처럼 만들고자 하는 유명인과의 작업에는 쉽게 동하지 않는 편이다. 자기 본업에서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할지라도 책 작업을 할 때는 철저히 작가가 되는 사람이 좋다. 글을 유려하게 잘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책에 대한 책임감과 기대와 무게감을 가지고 충분한 시간을 투여해 원고 작업을 할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을 찾고 기다린다는 말이다. 자신이 이만큼 유명하니 출판사에서 알아서 멀끔한 책으로 만들어 주겠거니 바라고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의 책은 결과적으로 잘되지도 않거니와, 작가 자신과 편집자, 결국은 독자에게까지 독이 된다.
‘나도 이만큼 유명해졌으니 남들처럼 책 한번 내 볼까’ 하는 즉흥적인 충동이 아니라, 책이라는 매체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마음에 품고서, 책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이테처럼 천천히 쌓아 가며 살아 온 유명인의 책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리고 나는 독자는 그런 유명인의 책을 알아보고 정직하게 반응한다고 믿는다.
유명인의 인기와 커리어의 부침에 따라 갈대처럼 판매량이 흔들리는 책이 아니라, 책 그 자체로 온전한 읽을거리가 되는 에세이를 나는 기획하고 싶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차트처럼 반짝 베스트셀러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가, 석 달도 못 되어 썰물처럼 독자가 빠져나가는 수명 짧은 책이 아니라, 우직하게 독자를 늘려 나가고 서점에서 오래 독자를 만나는 유명인의 책을 나는 기획하고 싶다.
이런 책은 그 유명인의 가장 빛나는 날에도, 이따금 좋지 않은 시절에도 그의 삶과 성취에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되어 주고 지지대가 되어 준다. 저자의 유명세에만 기댄 게으른 기획의 에세이는 그의 팬만을 타깃으로 삼았다가 팬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특별한 얘기는 없더라며 볼멘소리가 나오기 일쑤이지만, 고민을 거듭한 기획과 단단한 집필에서 나온 에세이는 호기심으로 심상하게 책을 집어 들었던 일반 독자까지도 그의 팬으로 끌어들인다.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