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홀 초창기에 나를 포함한 3명이 저녁 식사를 하는데, 정해진 식비 이상을 시킨 적이 있다. 내가 사비를 좀 더 내야 하는지 고민하는 찰나, 주문자는 거리낌 없이 “4명이 먹었다고 기록하면 된다”고 했다. 나를 수평적으로 생각해주는 것은 좋은데, 본인의 잘못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웠다. 누군가 지켜보지 않아도 스스로 규율이 있는 것. 그렇다. 자율은 지식 근로자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 의식은 기본이다.
실패가 뻔해 보이는 무모한 도전을 경영진이 일부러 선택하고 지시할 리 있었을까? 회사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이었다면, 블루홀의 인재들이 지난한 개발 과정을 견딜 수 있었을까? 콘솔 포팅 프로젝트에서 엿볼 수 있다시피, 인재들의 자발적 동기와 의지는 지식 산업의 근간이다.
지식 산업에서 실패는 흔하다. 시행착오는 더욱 빈번하다. 시행착오와 실패는 쉽게 관리되는 영역이 아니다. 제조업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6시그마는 지식 산업의 핵심이 아니다. 지식 산업은 인재의 책임, 자율성, 의지 등이 중요한 산업이다. 첨단 제조업도 제조업이라는 점을, 제조업과 지식 산업은 근본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기문, 『크래프톤 웨이』,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