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거기 맛있던데?’ 정도였다면 이제는 누가 만들었고 제조원은 어디며 판매자와 제조자가 같은지 다 따집니다. 배달 앱에서 맛집 메뉴를 시킬 때에도 업장의 로드뷰가 있는지를 봐요. 업장 사진이 없다? 그러면 상호만 10개씩 걸어놓고 매장은 없는 곳 아니냐며 믿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면, 만든 이의 의도를 알고 싶은 거예요. 의지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누가 시류에 편승한 무임승차자인지 알고 싶은 거예요. 동시에 처음부터 해온 그 사람의 굳은 의지와 역사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람들은 진짜를 판별하고, 근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이야기는 ‘진정성’에 이르렀습니다. 진정성이라는 말이 하도 많이 쓰이다 보니 진정성이야말로 진정성 없는 미사여구처럼 들릴 정도입니다.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진정성 정도가 아직 구성원들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기 때문인 듯합니다. ‘가짜’가 아니라는 의미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니 이제는 ‘진짜’로서의 진정성을 생각해볼 차례겠죠. 앞서 ‘인간인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 답이 기술이 아닌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오리지널리티, 저작권을 가져야지 기술이나 기예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창시자가 돼야 해요. 오리지널리티 없이 기술을 습득한다면 기술이 자동화되기 시작했을 때 나의 가치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창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숙련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생각을 먼저 해야겠죠. 과거처럼 도제로 들어가서 기술을 익히는 게 먼저가 아니에요. 무엇을 할 것이며 누구에게 배울 것인지,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북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