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군다나 한글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 영어가 되감는 구조인 이유는 관계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관계 부사나 관계 대명사를 통해 앞에 놓인 말을 뒤에서 설명하며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가는 구조가 흔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어에서 관계사라고 할 만한 건 체언에 붙는 조사밖에 없다. 따라서 한글 문장은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갈 이유가 없다.
The man who told me about the murder case that had happened the other day was found being dead this morning. 일전에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 준 그 남자가 오늘 아침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앞의 영어 문장이 관계사를 중심으로 두 번이나 되감기면서 의미를 확장해 나아갔다면, 한글 문장은 계속 펼쳐졌다. 영어 문장이 되감기는 공간으로 의미를 만들었다면 한글 문장은 펼쳐 내는 시간으로 의미를 만든 셈이다. 그러니 한글 문장은 순서대로 펼쳐 내면서, 앞에 적은 것들이 과거사가 되어 이미 잊히더라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 요소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해야 한다.
계속 걸어간 나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나는 계속 걸어서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첫째 문장은 주어인 ‘나’를 수식하는, 동사 ‘걸어가다’의 관형형 ‘걸어간’과 그걸 수식하는 부사 ‘계속’이 만든 문구 ‘계속 걸어간 나는’이 만드는 거리와, 그 뒤로 이어진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가 만드는 거리가 다르다. 앞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밭은 느낌이다. 이렇게 거리가 일정하지 않으면 뭔가 펼쳐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둘째 문장처럼 거리가 일정하게 펼쳐 낸 경우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해진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이다.
-김정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