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아이를 키운 저자가 엄마인지 아빠인지, 할머니인지 할아버지인지 최소한의 정보도 담겨 있지 않다. (단, 투고 기획서에서 저자 프로필을 구체적으로 쓴다면 이 내용은 생략될 수 있다.)
육아 경험담이라는 내용 정도만 짐작할 수 있을 뿐 ‘진실한 사랑과 베풂의 가치’란 주제는 너무 추상적이고 광범위하다. 게다가 육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미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다. 왜, 어떤 계기로 이런 가치를 발견했는지가 짤막하게라도 드러나야 한다.
많은 초보자가 실수하는 최악의 표현이다. 대개 ‘담담하다’는 표현은 단어 자체가 떠올리는 중립성(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감정적 동요 없이 차분한)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써도 ‘착하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쓰면 독자도 마찬가지로 책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담담하게 지나쳐 버릴 것이다. 이 표현 하나가 결국 그 책을 별 특색 없이 밋밋한 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팔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은 바로 이 표현 때문이다.
밑줄 칠 곳마저 없는 치명적인 누락. 결정적으로 누가 이 책을 볼 것인지, 어떤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지가 빠졌다. 예상 독자가 상정되지 않은 책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에세이라면 어떤 에세이인지도 드러나야 한다. 국내에 출간되는 에세이만 해도 한 달에 수십 종이다. 출간되면 서점에는 자동으로 ‘에세이’ 분야에 자리를 잡겠지만 콘셉트에서 ‘그냥’ 에세이는 없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런 시대에 있어서 모든 것은 새로우면서도 친숙하며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원고를 읽고 기쁨을 느끼거나 도움을 얻게 될 누군가가 세상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면 계속 나아가도 좋다. 아마도 당신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가르쳤던 학생이나 직장 동료가 아니라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도 모르며 평생 만날 일도 없지만 나의 원고에 관심을 가져 줄 독자, 그런 독자가 있다면 그는 어떤 사람일까?’
당신의 책이 있어야 할 곳은 서점이 아니라 독자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 떠올릴 수 있는 독자가 단 한 명이어도 괜찮다. 굳이 ‘단 한 명의 예상 독자’를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독자를 부풀리지 말 것. 바꾸어 말해 당신의 원고에 충실한 특정 독자(소수라도 괜찮다)를 찾을 것.
둘째, 그러나 당신의 원고가 세상과 어떻게 더 많은 인연을 맺게 될지 과감하고 자유롭게 상상해 볼 것.
이런 상상과 발견의 과정에서 놀라운 떨림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예비 기획서를 보내는 일이 낚시와 같다는 점을 기억하자. 낚싯대에 너무 많은 미끼를 달아 놓으면 낚시감을 잃고 만다. 간결하고 간단명료한 방식으로 그리고 열정을 담아 읽는 사람이 감질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획서에 가제목을 5–6개씩 나열해 놓고 그중 하나가 책의 제목이 되면 좋겠다고도 한다.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편집자의 눈에는 원고와 콘셉트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투고하기 전에 충분히 원고를 고쳐라. 가제는 고심해서 만든 콘셉트에서 추출하거나, 차례 중 호기심을 끌 만한 것으로 정하면 충분하다.
-정상태,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