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이 좋았다고 해서 다른 책도 무조건 좋으리란 법은 없기에, 원서를 받고 매우 꼼꼼하다는 번역가 선생님께 검토를 맡겼다. 그런데 며칠도 안 돼 대뜸 전화가 걸려 왔다. 원고에 문제가 있는 걸까 긴장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엄청나게 흥분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이런 걸작이 아직까지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너무나 압도적인 작품이라 마음이 아픈 것을 넘어 몸에 통증이 올 정도이니, 이 작품은 꼭 번역되어야만 한다고. 그렇게 되게끔 좋은 문장으로 옮기겠다고. 나도 좋은 작품을 만나면 수시로 흥분하고 열변을 토하기 일쑤이지만, 그때 걸려 온 전화 속 음성은 잊을 수가 없다. 이렇듯 세상 어딘가엔 분명히 있다. 나의 막연한 감과 호기심을 확신으로 바꿔 주는 사람들, 내가 못 읽는 언어, 내가 완전하게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채워 주는 사람들이.
내가 좀더 눈여겨보는 곳은 자기만의 취향과 기준으로 화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개인들의 SNS다. SNS를 둘러보면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그림으로 대신 말하는 일반인이 많다. 신진 화가와 고전 화가, 국내 작품과 해외 작품을 아울러 아름다운 이미지와 미술, 사진 작품을 차곡차곡 포스팅하는 그 ‘미술 친구’들은 나처럼 어떻게 미술의 세계로 들어서야 할지 알지 못하는 초심자들을 위한 친절한 길잡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가님이 방한하셨을 때, 기념사진 스폿인 광화문 이순신 동상을 멀리 배경으로 걸고 사진을 찍어 드리려 했지만, 근처에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계신 모습을 보고는 아무리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그분들 곁에서 기념사진을 찍진 않겠다고 하셨을 때 느낀 뭉클함. 언어를 초월해 진심이 느껴지던, 슬픔을 배경으로 두고 자신을 내세우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는 거장의 마음.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유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