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변화가 직업관으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업을 생각할 때에도 직업과 직장과 커리어를 각각 다른 형태로 생각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직업은 사회적 역할과 하고 싶은 업을 절충한 것이고, 직장은 인간관계나 근무환경이 중요한 반면, 커리어는 개인적 목표와 훗날 쓸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는 것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 셋을 같은 것으로 봤는데 분화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직장 내의 관계도 달라집니다. 10년 전에는 선배가 모범을 보이고 후배에게 열정을 기대하는 모종의 위계가 있고, 그에 따라 ‘존경’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지금 요구되는 것은 ‘나를 괴롭히지 마세요’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영원한 상사였을 사람이 지금은 한시적 동료인 것입니다. 동료가 내게 무례하게 구는 걸 참을 수 없고, 심지어 그 관계마저 한시적이니 훗날을 기약하는 미덕을 굳이 발휘하지 않습니다.
상사가 아니라 동료가 되면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아십니까? 상대가 일하지 않는 것에 분노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데이터에서 상사와 관련해 ‘무능’이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유죠. 예전에는 상사가 일 안 한다고 뭐라 하지는 않았어요. 저분은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지금은 상사와 직원 모두 능력을 따집니다. 상사가 관리자가 아니라 동료로 인식된다면, 이제는 상사도 일해야 하는 거죠. 물론 상사에게 능력을 요구하는 신입도 그래야 하고요.
이렇게 하여 모두 다 일하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정성 이슈가 나오고, 집단평가가 아니라 개인평가로 선회합니다. 이제 회사에서 가장 배척되는 사람은 다 된 밥상에 숟가락 얹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흔히 2030은 업무와 보상체계, 그에 따른 처우 등이 행복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그 속내를 보면 사실은 인정받고 싶고, 내가 하는 일에 자신감을 얻고 싶다는 기본적인 욕구에 기인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에 맞게 우리 조직의 제도와 문화도 바뀌어야겠죠. 동료로서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 그의 커리어를 만드는 동반자가 되기 위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북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