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분명히 하고 열심히 추구한다 해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표적에 눈길을 주지 않으면 명중시킬 수 없다. 표적을 겨누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조준한 뒤 빗맞혔을 때의 이점을 활용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배움에서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노력해서 성공한다는 말은 어떤 것을 시도하고, 목표에 미치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을 힘겹게 배우고, 다시 목표를 재조정하고, 그런 뒤 ‘진저리가 날 정도로’ 시도하고 실패하고 재조정하고를 반복한다는 의미다. 실패에서 얻은 모든 배움은 때로 당신에게 다른 야망을 가지라고 조언한다(다른 게 더 쉬워서가 아니다. 당신에게 포기하거나 회피하라고 종용하는 게 아니다. 당신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당신이 찾는 것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곳에 없거나, 당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세계에는 숨겨진 위험과 기회가 가득하다. 위험과 마주치기가 두려워 모든 걸 안개 속에 묻어둔다면, 그토록 외면해오던 것을 향해 돌진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을 때 당신은 이미 다리가 풀려 있을 것이다. 당신은 의식의 밝은 빛으로 흐릿한 안개를 깨끗이 날려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날카로운 나뭇가지에 찔리고, 바위에 부딪히고, 안전한 피난처를 지나칠 것이다. 그런 뒤 장애물과 방벽 천지인 미로를 만들었다며 사람을, 현실을, 신을 저주할 것이다. 그때 타락이 손짓하고, 당신은 어둡고 은밀한 동기에 이끌릴 것이다. 그런 동기는 실패를 불씨로 삼고 좌절을 연료로 삼아 점점 더 강해지고 사악해질 것이며, 급기야 그 정점에서 당신은 나쁜 사람들이 당신에게서 가져갈 만한 것을 모두 가져갔다는 억울한 믿음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런 태도가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행동과 무행동은 당신의 삶과 공동체, 당신의 나라와 이 세계를 초라하게 만들고, 그런 뒤 다시 존재 자체를 초라하게 만들 것이다(바로 이것이 어둡고 은밀한 동기가 바라는 결과다).
-조던 피터슨, 『질서 너머』, 김한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