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인생에서 만난 ‘누구’가 반드시 사람인 것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누구는 책이기도,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만화 『슬램덩크』이기도, 겸재 정선이기도, 보티첼리의 그림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누군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만든 콘텐츠는 곧 그 사람(창작자)의 총체일 테니까요. 그렇게 저는 고등학생 때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를 만나고, 2년 차 카피라이터일 때 겸재 정선을 만났던 겁니다. 저란 사람의 ‘생각의 인생’을 바꾼 몇 번의 만남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어릴 적 사냥하듯 읽은 책들을 나이가 들어 다시 읽고는, 내가 읽었던 그 책이 이렇게 좋은 책이었나 싶던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수학여행 때 갔던 여행지를 다시 가 보고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열일곱의 난 대체 무얼 보고 돌아왔나 싶던 순간도 있었을 겁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흘려 듣던 유행가도 실연당하고 난 뒤에 들으면 눈물을 펑펑 쏟게 만드는 법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으면, 만남은 흔적 없이 사라집니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경우가 이렇죠.
-유병욱, 『생각의 기쁨』, 북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