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만의 죄를 부추기는 또 다른 동기는 쉬운 길을 가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당신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살아도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진정한 책임을 지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는데 나까지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사람이 떠맡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슬쩍 빠져나오는 게 현명하지 않나?’ 하지만 모든 사람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이득을 주고받으며, 그런 상호작용이 지속될 수 있도록 번갈아가며 책임을 진다. 세 살 때 이런 상호작용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 시간을 초월해 꾸준히 이어지는 게임을 할 줄 모르면 우정을 쌓을 수 없다. 친구를 사귀는 능력은 회사에서 좋은 상사, 동료, 부하 직원을 만들 때도 필요하다.
월급을 많이 받지 못한다면 일에서 슬쩍 발을 빼도 괜찮으며, 심지어 그래야 현명하다는 말은 또 어떤가? 이 말에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 판단이 함축되어 있다. “내가 쉬운 길을 가도 크게 문제없어”라는 말에서 “크게 문제없어”의 이면에는 나라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는 평가가 녹아 있다. “내가 쉬운 길을 가도”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저주다. 만일 당신이 피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해낸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신뢰하게 되고, 당신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게 되며, 그로 인해 어려운 일을 더 잘하게 된다. 그럼 상황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만일 그 모든 것을 외면하고 내팽개쳐둔다면, 당신은 부모가 모든 걸 대신해주는 아이가 되어 인생의 어려움과 도전에 직접 부딪치며 성장하는 능력을 잃는다. “내가 쉬운 길을 가도 크게 문제없어”라는 말은 말하는 사람에게 모험에 끌리는 요소가 전혀 없을 때만 참이다. 게다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자신의 운명을 피해 뒤로 물러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쉬운 길 대신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이로웠을 테니 말이다.
-조던 피터슨, 『질서 너머』, 김한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