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에디터로 일하면서 여러 가지 기분을 느꼈다. 아주 슬펐던 때도 있고 짜릿했던 때도 있었다. 잡지 에디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부터가 실수였다고 생각한 적도, 내가 그래도 이 맛에 이 일을 하는구나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최대한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내가 훌륭한 에디터라거나 유명한 에디터가 아닌 건 잘 알고 있다. 그저 지난 호보다는 나은 페이지를 만들려 노력한다. 그 정도면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라이프스타일 잡지 업계를 벗어나고 싶던 때가 있었다. 물건이 다 뭔가, 취향이 다 뭔가, 물건의 보드라움만 따라다닌 지난 몇 년 동안 나에게 남은 게 뭐가 있나, 이런 허무가 새벽의 한기처럼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 고민이 길어지자 좋은 잡지사에 다니고 있으면서 앞날 계획도 없이 그만뒀다. 그때까지 모으고 있던 빈티지 붐박스를 다 버렸다. 엄마가 표현한 돈 주고 산 쓰레기가 그 붐박스였다. 실제로 모양만 보고 사서 작동이 안 되던 것도 많았지만 그 물건에는 성능 이상의 멋이 있었다. 80년대 물건다운 튼튼함과 견고함, 거기 더해 디자인 전반에 뭔지 모를 낙관이 있었다. 그걸 다 버렸다.
마음이 약해지면 남들을 곁눈질하기도 했다. 남들은 다 그럴듯한 것, 멋있는 것, 나는 못하는 것을 잘만 하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빙글빙글 도는 데에만 기력을 다 날려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체력도 약한데. 그때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 싶었다.
-박찬용, 『잡지의 사생활』, 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