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규가 진단하기에 품격 있고 검증된 제작 리더십이 드문 이유는 게임이란 제품의 기본 속성 때문이었다. 게임의 본질은 재미다. 재미는 감성이며 본능이지, 이성이나 합리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재밌게 느끼는 요소가 어떤 사람에겐 전혀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재미, 감성, 본능은 대화를 통해 공감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하물며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재미를 만드는 사람은 어떻겠는가. 작가 한 사람이 소설을 써내듯, 혹은 영화 감독 한 사람이 촬영 현장을 총괄하듯, 소수의 리더십이 제작을 이끌 수밖에 없는 게 게임업의 본질이다.
재미를 발견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시행착오의 과정이며, 제작자는 도자기 장인처럼 만들고 깨고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게임의 재미 요소는 PD의 머릿속에만 있기에, 홀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독재적인 성격의 PD가 흔하게 등장하는 이유다.
더구나 MMORPG는 복잡하고 거대한 물건이다. 이 세상을 닮은 가상 세계를 창조하는 일은 그만큼 여러 사람의 노력을 요한다. 문제는 게임 속 작은 부분 하나를 바꾸면 전체 세계가 흔들린다는 것. 그러므로 제작 책임자는 의사결정을 다른 이와 함께 나눠 하기가 어렵다. 이런 속성 또한 리더십의 독단을 낳는다. 리더는 팀원에게 어떤 조치로 인해 변화하는 게임의 전체 모습을 짧은 시간에 일일이 설명하기를 수고로워한다. 그렇기에 그는 “일단 시키는 대로 하라”고 주문한다.
-이기문, 『크래프톤 웨이』, 김영사.